나는 오픈톡을 제법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넓고 가벼운 인간관계가 신체와 정신을 건강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늘 풀고싶은 썰은 수많은 오픈톡 중 하나에서 겪었던 일화이다.
톡방의 컨셉은 (정확한 워딩은 생각안나지만) "지성과 합리주의를 추구하는", "객관적인 근거에 기반한 토론"이었다.
하루는 모 단톡방에서 어떤 분이 이런 취지의 기사를 공유했다.
특허받은 한약 신물질 ‘신바로메틴’ 닳은 뼈·연골도 거뜬히 재생 | 중앙일보 (joongang.co.kr)
그리고 이런 코멘트를 하셨다.
"한약의 효과가 과학적으로 규명되어가고 있네요."
그러자 스스로를 의사라고 밝힌 한 유저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런 것들 건강기능식품이라고 받아서 드시는 것이 문제다. 예전에 수련할 때 유일하게 20대를 살리지 못한 케이스가 이런 것들을 먹고 오는 경우였다."
(기억을 더듬어 적는 것이라 정확한 표현은 아닐 것이다. 다만, 신바로 이야기 이전에는 침의 효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으니 건강기능식품이나 내복약이라고 하면 신바로를 지칭하는 것일 것이다.)
"저건 한약이긴 한데 한의사가 처방하는 약은 아닌데요 ㅎㅎ"
'신바로캡슐' 처방한 한의사에 대법원 "처방·조제 권한없다" < 기관·단체 < 뉴스 < 기사본문 - 청년의사 (docdocdoc.co.kr)
매우 뼈아픈 지점이지만 대법원은 신바로캡슐을 비롯한 천연물 신약을 한의사가 사용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신바로는 기존의 청파전이라는 한약처방을 자생한방병원과 서울대 천연물과학연구소가 공동연구하여 개발한 것으로 그 내용물은 명백한 한약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근본적인 원인은 한의사 시장이 매우 작다는 데에 있다. 녹십자가 3만명 가량에 불과한 한의사 시장을 위해 생산라인을 돌릴 필요가 있는가? 심지어는 3만명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이 사용할 것이 분명한데... 따라서 녹십자는 '한의학적 입장'에서 임상시험을 진행한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할 것이다. 기업은 원래 이윤을 따라가는 것이 자연스럽다.)
아무튼 신바로의 처방 주체는 한의사가 아니라 양의사라는 것을 짚어주었다.
그리고 신바로의 구성성분을 찾아보았다.
음? 아무리봐도 독성이 강한 약재는 보이지 않는다.
(한약의 독성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는 한약독성학 시리즈를 참고하면 좋다. 한약의 간독성은 권찬영교수님 블로그글에 잘 정리되어있다.)
그래서 혹시 기저질환이 있는 분인데, 신바로만을 처방하며 치료시기를 놓친 것인지 물어보았다.
사실 그것도 말이 안되는 것이 신바로의 적응증은 (퇴행성) 골관절염, 디스크 탈출증 등으로 인한 저림 등의 감각이상이 동반된 통증이다. 이런 질환들은 직접적인 사망의 원인이 될 수 없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말이 가관이다.
"기저질환이 없어도 문제되는 경우 많죠. 저 같은 경우는 환자가 건강원에서 지어온 한약을 먹고 실려온 경우였어요."
개인적으로 건강원 같은데서 개소주탕을 먹고 온 경우에도 그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근거가 있어야 할 것 같다. 궁예질을 해보자면 건강원의 '한약' 때문이라고 역설하는 것으로 보아 전격성 간염 등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이 (자칭) 의사선생님의 관념 속에서는 건강원에서 지어먹는 것도 한약이고 임상 4상을 통과한 전문의약품도 한약이라는 것이다. 참고로 신바로는 임상 4상을 통과하였고 당연하게도 장기간의 안전성 역시 엄밀한 기준으로 확인된 약이다.
개인적으로 인간이 오래 사용해온 약용식물들은 어느정도 안전성이 확보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물론 나도 한약의 안전성을 꼼꼼하게 임상3상을 거쳐 확보하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돈이다. 신바로의 건에서 보듯이 거대 제약회사가 개발할 유인이 부족하고, 개발한다하여도 한의사가 처방하기 어려운 현실이 있다. 제약사 입장에서는 한약을 힘들게 제품으로 만들어놓으면, 정작 한의사들은 그 제품을 쓰지 않는다. 90% 이상은 기존 방식대로 첩약으로 사용하겠지. 그러면 한의계에서 스스로 임상시험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일단 신바로도 그렇게 진행된 것이긴 함. 다만 제약회사의 역할은 쩐주이다. 모든 일에서 그러하듯 연구에도 돈이 든다. 정해진 예산을 쥐어짜내야 하는 좁은 한의계 R&D 사정상 수천년의 경험으로 인정되었고 일부 집단을 제외하고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한약의 안전성에 많은 예산을 편성할 수 없다. 하면 좋지. 근데 하려면 천문학적 돈이 든다는 게 문제다.
이게 전부 같은 카테고리로 묶인다는 것 아닌가? 감초 사탕을 직구해서 많이 쳐먹은 후 위알도스테론증으로 실려와도 "전부 다 한의사 때문"이라고 할 기세인데...
비유하자면 당신이 혈액종양내과 전문의인데, 누군가 "항암제로 살해당했다"고 주장해서 가봤더니, 암에 좋다고 하여 천연 플로토늄-239를 가루내어 항암제라고 먹고 있는 사람을 본 기분이라고 할까. 그리고 그걸 보고 옆방 의사가 "야 이거 혈액종양내과 의사들 완전 쓰레기네."라고 이야기했을 때의 그 기분?
모든 논의의 시작은 정명(定名)에서 시작해야 한다. 간혹 한의학이나 한약을 까는 이야기를 듣다보면, '아니, 저런것도 한의학이라고?' 싶은 것이 있다. 공보의 시절 나의 한 의사친구는 군의관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때는 둘 다 인생에서 가장 한가로운 시기였기 때문에 별 시덥잖은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간혹 "우리 소대장이 ~~~라는데 이런것도 한의학이야? 너네는 왜 ~~~ 하는거야?" 하는 식의 질문을 종종 들었었다. "아니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 소대장한테 물어봐라."라고 친절하게 답변해주곤 했는데, 한의학의 가장 큰 약점이 이 지점인 것 같다.
수술 등에 비해 진입장벽이 낮다보니 가감없이 말하면 개나소나 한의학을 한다고 한다. 근데 그게 전부 한의학은 아니란 말이다. 가장 위급한 stage의 환자들로 이루어진 표본 집단에서, 무면허 돌팔이 행위의 피해자 몇 명을 만나보고, 그 가해자로 한의사를 꼽는 것은 너무 억울하지 않겠는가?
의사집단은 언젠가부터 학부시절에서부터 뿌리깊은 한의사 혐오를 말 그대로 주입당하고 교육받는다. 그것을 스스로 깨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특히 폐쇄된 집단에서 그러한 증오의 힘은 더욱 가속화되는 경향이 있다. 집단에서 배제되는 공포심에 한의학에 옹호적인 말을 꺼내는 것도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한번쯤은 멈춰서서, 내가 하는 내 생각이 정말 나의 순수한 이성을 통해서 나온 사고인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아무튼 스스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사람을 자처하는 사람 치고 과학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을 별로 못봤음. 차라리 겸손해라.
* 추가로 읽을 거리
- 한약을 모함하기 위한 엉터리 도구 : Modified RUCAM이란?
악의적인 한약 폄훼를 위해 '그들'은 어떤 방식을 사용해왔는지, 그 일각입니다.
- 한약인성 간 손상에 대한 연구 동향 : 임정태 교수
한약인성 간손상에 대한 객관적인 연구동향입니다.
- https://omdgaba.tistory.com/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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