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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

직업으로서의 '한의사'에 대해

by KMDK 2022. 4. 29.

한 때 허준이라는 드라마와 함께 한의대 붐이 불었었다.

당시 한의사들은 신용대출을 받아 한의원을 차리면 수년 후 그 건물을 사들일정도였다고 하니, 그럴만도 하다.

비급여인 한약 처방전을 쓰는 시간이 아까워, 침 값은 청구조차 하지 않았다고 하니 한의사 전성시대는 80-90년대가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이제 한의사의 위상이 그때만하지 않다.

내외부로 공격을 많이 받고 있으며, 독점하던 한약 시장도 건강기능식품 시장으로 분산되었다.

 

이 글은 한의사라는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학생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1. 경제적 관점 : 아직까지는 나쁘지 않다.

 

일단 과거처럼 면허만 따면 건물주가 되는 수준은 아니지만 면허를 따면 페이만 뛰어서 억대 연봉을 받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개원은 월 2000 이상을 목표로 하거나, 내가 원하는 진료 스타일이나 치료철학을 구현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 같습니다.

 

전문직이 될 수 있는 의치한약수 등의 입결이 높은 이유는 전문직 면허의 가치입니다. 그리고 전문직 면허의 가치는 곧 국가가 보장해주는 독점권입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봅시다. 누군가 독학으로 해부학과 생리학을 익히고 뒷골목에서 수많은 경험으로 외상을 수술해온 사람이 있다고 해봅시다. 그 사람이 수술을 잘할까요, 의대 6년 과정을 졸업한 인턴이나 수련의가 수술을 잘할까요? 당연히 무면허이지만 경험이 많은 사람이 더 잘합니다. 그것이 술기입니다. 특정 술기에 있어서는 경험이 깡패죠.

 

그런데, 이 수술을 잘하는 사람이 내 병원 옆에 병원을 낼 수 없습니다. 국가가 내 경쟁자의 수량을 조절해주는 것입니다.

 

조금 덜 자극적인 주제로 가서, 내가 치킨집을 한다고 해봅시다. 동네 치킨집을 냈는데 옆에 BBQ부터 유명 프랜차이즈 치킨집들이 우후죽순 생겨납니다. 대량 생산을 통해 가격도 낮고 품질도 뛰어납니다. 그러면 내가 경쟁력이 있을까요?

 

그런데 국가가 어느날 '치킨 면허증'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면허가 있어야만 치킨집을 차릴 수 있고 1년에 100명씩만 합격시킨다고 해봅시다. 그러면 치킨 면허만 따면 치킨집을 할 만 하겠죠.

 

 

이것이 전문직 면허의 힘입니다. 더 많이 알고, 더 오래 공부하고, 더 똑똑하고... 이런 것은 사실일 수는 있지만 핵심은 아닙니다.

 

의사 전문의 과목 중 가장 인기높은 과가 무엇인지 보십시오. 기본적으로 개원이 편한 과가 인기가 높습니다. 한의사는 개원이 편하지만 독점권이 떨어지는 의사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무슨 말이냐면 한의사가 할 수 있는 것은 의사가 거의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다소의 분쟁은 생기겠지만요. 침은 드라이니들링으로, 한약은 천연물 신약으로 처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의사는 수술을 할 수 없고, 스테로이드 주사를 놓을 수 없고, 의료기사(물리치료사, 방사선사 등)를 둘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경제적인 부분만 보자면 가급적이면 의사, 치과의사가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핵심은 독점이기 때문입니다. 의사야 원체 힘이 센 집단이고, 전 세계 어느 선진국에서도 가장 높은 성적의 입결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치과의사의 영역은 다른 어떤 집단에 의해서도 대체되지 못합니다. 그러나 한의사는 위태롭죠.

 

그래서 요즘 분위기로는 그다지 좋지는 않지만, 나쁘지도 않다고 표현하였습니다.

 

 

 

2. 어떤 사람이 한의사에 잘 어울리나? : 무형의 가치를 볼 줄 아는 사람

 

일단 한의사가 되면 공부를 오질나게 많이 해야 합니다.

'되려면'이 아닙니다. '되면' 입니다.

 

왜냐하면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한계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책적인 한계를 갖고 있는데, 효과를 확실하게 내야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한의사는 전통 한의학 공부도 해야하고, 현대적인 의학/생물학/약학의 공부도 게을리 하면 안됩니다. 안그러면 뒤쳐지거든요..

 

그리고 공격을 많이 받습니다. 주로 의사 진영, 제약회사 직원들, 방구석 백수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진리를 탐구하기 위한 기본 조건이 끊임없는 자기 회의입니다. 그것을 자동으로 하게 됩니다. 방어하다보면 레벨이 쑥쑥 올라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타인의 평가에 대해 무감각하며, 목표지향적이며, 감각되지 않는 추상적인 가치에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 좋습니다. 굳이 MBTI로 따지자면 NT 계열이겠네요. 이런 사람이 한의학을 공부하면 행복한 것 같습니다. 제가 INTP입니다.

 

 

 

3. 워라밸은 어떤가요? : 의료전문직 중에서는 최고가 아닐까

 

한의사는 기본적으로 고수가의 치료항목이 없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침을 놓고, 추나를 해야 합니다. 몸이 좀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과 직결되는 바이탈과가 아니기 때문에 심적으로 편안하고 대체로 안전한 치료법이므로 의료사고 및 소송의 부담이 없습니다. 환자가 진상피울 가능성도 비교적 낮은 것 같습니다. 대표적으로 성형외과 같은 경우, 미용목적의 시술이므로 부작용에 대해 매우 민감하고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두 발로 걸어오는 환자를 보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응급실의 아비규환을 한번 경험해보면 실감이 날 겁니다.

 

그리고 이건 단점이기도 한데, 수련과정이 필수적이지 않습니다. 6년 졸업 후 곧바로 돈을 벌거나 개원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죠. 개인적으로 졸업만 하고 개원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습니다.

 

결국 경쟁력은 투입 시간과 노력으로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해줄 제도가 필요한데, 한방전문의는 일반 한의사에 비해 특출난 무언가가 없습니다.

 

 

 

4. 자녀가 한의대에 간다면? 한의사 시키실건가요? : 자기가 하고싶은대로 해야죠.

 

부모, 자식간이라고 하더라도 서로 다른 개인입니다. 본인의 인생은 본인이 선택해야 합니다. 어떤 결과가 뒤따르더라도요. 그래야 자신만의 경험이 됩니다. 시키는대로 살면 언젠가는 공허해집니다. 작은 결정 하나 스스로 내리지 못하고 우울해집니다.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는 거죠. 극단적으로는 자살까지 가게 됩니다.

 

만약 본인이 의업에 관심이 있다면, 저라면 의대로 보내겠습니다. 마이너의 삶은 고달픈 법이거든요.

다만 본인이 한의사를 하고 싶은 것이라면, 제가 말릴 수는 없겠죠. 그럴 필요도 없구요. 만약 가업을 이어받겠다면 잘 가르쳐줘야지요.

 

한의대가 최근에는 의대에 비해 성적이 많이 떨어졌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들어갈 때는 한의대가 어지간한 의대들보다는 컷이 높았는데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인생을 너무 합리적으로만 살 필요는 없습니다. 세간에서 말하는 합리적이라는 것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이라는 것이지, 올바른 방식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본인의 인생이니 깊이 고민해보시고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다만 성적에 맞추어 진학하는 것은 그다지 추천하지 않습니다. 의대를 못가서 한의대를 가면 고달파집니다. 한의사를 하고 싶을 때 한의대로 진학해야 합니다. 인생의 다른 결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조씨는 원래 수학과를 가고 싶었습니다. 고등학생때까지는 수학덕후였거든요. 정보를 얻기 힘들었던 시절인데 도서관 출퇴근하면서 전공서를 포함해 맨날 쓸데없는 수학책만 읽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IMF를 지나오면서 겪은 경험들때문에 고3때 진로를 급 선회하게 됩니다. 안정적인 경제력이 필요할 것 같았지요. 당시 생각으로는 나중에 돈 많이 벌고나서 취미로 공부하면 되지 않을까 했습니다만, 절대 그렇게 안됩니다.

 

가슴이 시키는 일이 있다면 지금 당장 해야합니다. 아니면 못한다고 봐야죠.

 

나이를 먹어서 하는 도전은 내 주변사람의 희생 위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아니면 최소한 2022년 기준으로 30억 수준의 순자산을 굴릴 줄 알게 된 후에 도전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주변의 선생님들이나 부모님들이 인생에 대해 많이 알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그 분들은 자신의 인생 말고는 잘 모르는 분들입니다. 그러니 절대 흔들리지 말고 본인이 원하는 길을 향해 직진하셨으면 합니다.

 

 

5. 마지막으로 한의사라는 직업이 가지는 매력은 무엇일까요?

 

가장 큰 장점은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의 건강을 지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100세 시대도 무색합니다. 아마 저는 120살까지 사는 것을 목표로 해야할 것 같은데요. 초고령화사회로 갈수록 한의학이라는 학문은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특히 만성질환으로 이행되면서부터는, 대개 인간이 이해하기 힘든 매커니즘으로 넘어갑니다. 수천년간의 축적된 경험의 산물인 한의학은 만성질환, 난치성 질환에서 빛을 발합니다. 생화학적인, 분자적인 매커니즘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아무튼 작동은 하는 원리인 것이죠. 그리고 양약의 약리라고 해서 당연히 모든 부분이 밝혀져 있지 않습니다. 간혹 주류의학은 모든 것이 검증된 것이고, 한의학을 위시한 보완대체의학은 근거가 미약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자연 앞에 우리는 똑같이 무식합니다. 너도 한 방, 나도 한 방인 셈이죠. 이 부분은 과거에 작성한 글을 말미에 링크 걸어두겠습니다.

 

한의사는 부침(浮沈)이 있을 수 있는데, 한의학은 무한한 가능성이 열려 있습니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한다한들, 한의학을 가장 잘 이용할 수 있는 것은 한의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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