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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by KMDK 2022. 4. 22.

철학책이나 윤리학 관련 도서를 읽다보면 sein과 sollen이라는 용어가 나온다. 만약 독일어를 공부한 적이 있으신 분이라면 매우 익숙한 단어일 것이다. 영어로 따지자면 (완전히 1:1 대응이 가능한지는 모르겠으나) sein은 be동사, sollen은 should 등의 의무 조동사로 생각할 수 있겠다.

 

sein이란 있는 현상을 그대로 표현하는 명제이다.

sollen이란 이상적인 지향점을 표현하는 명제이다.

 

간단히 예를 들자면

 

우리는 부족하기 때문에 (sein 명제)

도덕적으로 완벽한 사람이어야 한다. (sollen 명제)

 

라고 할 수 있겠다.

 


 

갑자기 이 이야기를 왜 꺼내느냐?

세상에는 sollen과 sein을 구분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서이다. 이 명제를 구분하는 것만으로 나와 내 주변인들의 인생이 매우 편해질 수 있다.

 

사피어-워프 가설에 따르면 우리가 쓰는 언어가 우리의 생각을 한정한다. 대개 이성으로 본능을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실패한다. 당장 다이어트를 하거나 시험공부를 할 때를 떠올려보라. 눈 앞에 도너츠가 차려져 있고, 거실에서 손윗형제가 치킨 냄새를 풍기고 있다면, 다이어트가 되겠는가? 그리고 공부를 해야하는데 옆 자리에 앉은 친구가 자꾸 게임방에 가자고 꼬드긴다면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물론 그게 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극한적인 자제력을 훈련하기보다 우리의 환경을 미리 조절해두는 것이 성공 가능성이 높다.

 


세상에 '~해야만 하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적어도 내가 살아온 바에서는 그런 것은 없었다.

 

물론 그러한 규범이 필요없는 것은 아니다. sollen 명제가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고, 필수적인 분야는 바로 법이다. 법을 지키는 것으로 충분하다.

 

다음으로는 예의가 있겠다. 사람과 사람간의 소통에서 타인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한 사회적 규범이다. 문화권마다 차이가 있지만, 이것은 어린 시절 부모가 학습시켜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것을 제외하고서는 sollen 명제를 '써야만 하는' 일이 없다. 원래 세상은 불확실한 것이다. 어떤 이상향을 설정하는 문장이기 때문에 두 가지 문제가 생긴다.

 

  • 이상을 정의할 수 없다.
  • 이상을 현실화시킬 수 없다.

순대를 쌈장에 찍어먹는 것이 옳은가, 소금에 찍어먹는 것이 옳은가? '막장'이 아니면 사문난적(斯文亂賊)인가?

서울대를 꼭 가야하나? 꼭 전교 1등을 해야하나? 꼭 의대를 졸업해야 하나? 이렇게 무분별한 의무를 지우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사실 서울대를 가는 것은 이상이 될 수 없다. 의사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성공에 대한 정의는 제쳐두고,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위한 길은 한가지가 아니다. 정의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 확고한 정의를 내리는 것을 강박이라고 한다. 그리고 강박은 자신과 주변사람을 갉아먹는다.

 

 

다음으로 '가사노동을 반반 부담해야만 한다'는 말을 생각해보자. 뭘 어떻게 반으로 나눌 것인가? 설거지와 청소 중 무엇이 더 힘든 노동인가? 설거지가 더 어렵다면 설거지 10분은 청소 12분으로 환산할 것인가? 설거지 거리가 적은 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손님이 온 이후에는 설거지 담당이 손해를 보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만큼 청소거리도 많아지지 않는가? 남편이 설거지 담당이라면 저녁에 퇴근해서 쌓인 설거지를 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둘이 같이 먹은 식사에 대해서만 설거지를 하는 것이 옳은가?

 

완벽한 반반노동은 불가능하다. 한 쪽에게 지나치게 불리한 분담은 지양해야겠지만, 모든 것을 반으로 나누자는 자세 역시 불행의 씨앗이다. 적어도 결혼생활에서는 내가 손해를 보겠다는 자세를 가지고 임하는 것이 좋다. 서로서로 조금씩 손해를 보는, 동적인 균형상태를 이루어야 한다. 만약 내가 조금도 손해보기 싫은 상대라면, 그런 상대와 왜 굳이 결혼을 하려하는가?

 

https://youtu.be/dOSi9Ra0zjA

 


결론 :

언어생활에서 의무를 나타내는 표현은 최소화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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