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페시아'가 극단적 선택을 일으킬 수 있다?
www.chosun.com/international/2021/02/04/GBLYVRLHH5HL3DFRZM46J7EZUI/
우울증이 무서운 이유는 자살 선택률이 높아진다는 점에 있습니다.
오늘 아침 탈모 치료제로 널리 알려진 '프로페시아'의 제조사가 약물이 우울증 및 자살율을 높일 수 있다는 부작용을 숨겼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프로페시아가 '성기능'에 미치는 악영향은 일종의 밈으로 쓰일만큼 유명한데요.
우울증? 자살? 이 부작용은 조금 생소합니다.
프로페시아는 무슨 약인가요?
널리 알려져있듯이 프로페시아는 탈모의 예방, 방지를 위해 개발된 약입니다.
탈모는 주로 남성에게서 일어납니다.
왜 남자만 이런 가혹한 질병에 시달리는 것일까? 그것은 호르몬과 관련이 있습니다.
DHT라고 불리는 호르몬이 있습니다. 테스토스테론에서 합성됩니다.
콜레스테롤, 스테로이드 대사과정을 공부하시면 됩니다. 위 그림에서는 제일 하단 가운데에 있습니다.
남성형 탈모의 주된 원인은 바로 이 DHT에 있습니다. 테스토스테론에 수소 쪼가리가 붙은 것 뿐인데... 테스토스테론과는 작용이 조금 다릅니다.
테스토스테론 | DHT |
정자형성 및 생식력 강화 (남성의) 근골격 발달 변성기 피지 생성 및 여드름 증가 성욕 증가 / 발기 증가 |
전립선 비대증 및 전립선 암 위험 증가 음모, 겨드랑이, 수염 등의 체모 성장 남성형 탈모 피지 생성 및 여드름 증가 |
인체가 그리 단순화시켜서 이야기할 순 없지만... 아무튼 나쁜 놈이라고 기억해도 좋겠습니다. 남성형 여드름도 DHT와 연관이 깊습니다. 테스토스테론, DHT, DHEA 모두 피지 생산을 늘리고 여드름을 심하게 만듭니다.
DHT는 왜 생기는 걸까요? 근원적인 논의는 여기서 나누기는 힘들 것 같구요. 위의 도식에서 볼 수 있듯이 주된 합성경로는 5α-reductase라는 효소에 의한 것입니다.
"그러면 DHT로 인한 질환들은 이 효소를 억제시키면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컨셉으로 만들어진 약이 피나스테리드(finasteride), 제품명 '프로페시아'입니다.
피나스테리드는 우울증을 일으키는가?
피나스테리드가 우울증을 일으킬 소지가 있을까?
우울증 부작용에 대한 언급은 과거부터 쭉 이어져왔습니다.
nedrug.mfds.go.kr/pbp/CCBBB01/getItemDetail?itemSeq=200009059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프로페시아 1mg정'의 정보를 읽어보겠습니다.
그 중 '사용상의 주의사항' 항목에 가면 경고항목에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3) 기분변형과 우울증 피나스테리드 1mg을 투여한 환자에서 우울한 기분, 우울증이 보고되었고, 이보다는 적은 건수로 자살생각을 포함한 기분변형이 보고되었다. 정신학적 증상에 대해 환자를 관찰하고, 만약 환자에게 이러한 증상이 발생하는 경우 피나스테리드 투여를 중단하고 의료전문가에게 상담하도록 해야 한다. |
사실 이 정도의 언급이라면, 케이스는 있되 명확한 상관관계는 드러나지 않은 것입니다. 탈모 환자군, 그리고 탈모로 확진받고 프로페시아를 처방받은 환자군의 심리를 잘 생각해봅시다. 일단 우울하지 않을까요? "우울한 기분" 정도라면 약으로 인한 것으로 생각하기는 어려워보입니다. 그리고 탈모와 스트레스의 관련성을 생각해보면 우울증과 탈모는 병인(病因)을 공유하는 관계에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피나스테리드가 실제로 우울증을 유발하는지, 어떻게 유발하는지 알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순전히 내 생각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관련 연구, 논문, 정리물들을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쉽고 간단히 정리해보았으니 끝까지 읽어보세요 ㅎㅎ
"피나스테리드 연관 우울증 (2006, BMC clinical pharmacology)"
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1622749/
- 대상 : 피나스테리드를 처방받은 126명의 남성형 탈모증 환자. 평균연령 25.8(±4.4)세
- 우울증의 평가 : BDI 및 HADS 점수
- 결과 : 피나스테리드 치료는 HADS 불안점수를 유의미하게 증가시켰다.
"자살과 우울증과 5-alpha-reductase 억제제 사이의 연관성 (2017, JAMA internal medicine)"
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5818776/
- 캐나다 온타리오 주 인구 데이터를 활용한 코호트 연구
- 2003년 1월 1일 ~ 2013년 12월 30일 사이의 피나스테리드/두타스테리드 처방을 받은 66세 이상의 남성 집단
- 결과 :
5ARI(피나스테리드 등)에 노출된 사람이나 노출되지 않은 사람이나 자살율은 비슷했다.
자해 행동이나 우울증은 보다 뚜렷하게 증가하였으나 그리 큰 영향은 주지 않는 것 같다.
아래 표 참고
"5-alpha-reductase 억제제 요법의 어두운 면 : 성기능 장애, 전립선 암 및 우울증(2014, Korean journal of Urology)"
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4064044/
- 신경활성 스테로이드 :
androsatnediol, allopregnenolone, tetrahydrocortisol, tetrahdyrocorticosterone ,tetrahydrodeoxycorticosteron 등
- 이러한 신경스테로이드(neurosteroid), 신경활성스테로이드(neuroactive steroid)들은 뇌에서 합성되거나 내분비선에서 합성된 이후 혈류를 통해 뇌로 이동하는 스테로이드들을 말한다.
* 신경활성 스테로이드의 역할
- 신경 가소성의 조절
- 학습 및 기억
- 신체활동 및 발작 감수성 조절
- 스트레스, 불안에 대한 반응
- 우울증에 대한 반응
- 정리하자면... 5alpha-DHT를 낮추기 위해 5alpha-reductase inhibitor를 사용하면 뇌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AP(allopregnenolone) 등의 신경스테로이드(neurosteroid)의 재료가 생성되지 않아 신경스테로이드의 농도가 떨어지고, 그로 인해 우울증이 생길수도 있다는 것.
결론? 나의 생각은..
만약 "피나스테리드가 자살을 유발하고 우울증을 만드느냐?"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걱정말라"고 답변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우울증, 우울한 기분을 늘려주기는 하지만 그 기전이 직접적이지 않으며 역학적으로도 신경쓸 수준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울증'이 나타난다면 약을 중단하거나 적절한 조치를 취하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자살로의 연관성은 매우매우 약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완전히 안전하냐?"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습니다"라고 답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자료들에서는 우울증과 자살에 대한 주의 문구가 들어가있습니다. 물론 이것을 찾아서 읽으며 복용하는 사람은 손에 꼽겠지만... 있느냐, 없느냐는 매우 민감한 문제죠.
이번에 이런 기사가 난 것은 '(대기업이 고의로 숨겨온) 약제의 부작용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발견'이 아닙니다. 찾으면 찾을 수 있는 정보이지만, 제조사인 머크사가 FDA에 "프로페시아와 자살 간의 뚜렷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기 힘들다"고 주장했고 그것이 받아들여진 것 뿐입니다.
과학적 진실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프로페시아를 먹고 자살한 사람이 높다"는 사실이 "프로페시아를 먹으면 우울증이 생겨 자살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는 명제와 같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물론 이것이 프로페시아와 우울증, 자살 간의 연관성이 없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위의 코호트 연구 자료를 참고하시면 더욱 감이 잘 올 것입니다.
제가 볼 때는 분명 미국 내 사회적 논란은 될 수 있을 문제일지언정 국내 프로페시아 복용자들에게 큰 영향을 줄만한 뉴스는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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