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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

해리엇 홀 - 침술의 신화에 침을 놓다

by KMDK 2021. 3. 11.

"무식한 건 죄가 아니다.

다만 본인이 무식한 것을 모르는 순간부터 죄를 짓기 시작한다."

 

 

저는 스켑틱 코리아 창간호부터 구독해온 오랜 구독자입니다.

21년 3월, 25호를 기분좋게 받았으나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기사가 실려있네요.

 


1. '침술'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심지어 중국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기원전 3세기에 나온 가장 빠른 중국의 의학서적에서는 침술에 대한 언급이 없다. '침놓기(needling)'에 관해 처음 언급된 것은 기원전 90년이었지만 그것은 커다란 침이나 바소로 피를 뽑고 고름을 짜내던 것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었다.

아마 '가장 빠른 중국의 의학서적'이라 함은 황제내경을 말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황제내경 이전의 의학서적은 남아있지 않으며, 오로지 황제내경을 통해서만 이전의 의학에 대해 짐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제 황제내경을 살펴볼까요?

故東方之域, 天地之所始生也, 魚鹽之地, 海濱傍水, 其民食魚而嗜鹹, 皆安其處, 美其食.
예를 들어 동쪽은 천지가 시작되는 곳으로 물고기와 소금이 생산되는 땅입니다. 바닷가라서 물이 주변에 있고 그 백성들은 물고기를 많이 먹고 짠음식을 잘 먹습니다. 안락한 곳으로 물고기와 소금으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고 삽니다.


魚者使人熱中, 鹽者勝血, 故其民皆黑色疎理, 其病皆爲癰瘍, 其治宜砭石.
물고기는 몸속에서 열을 나게 하고, 소금은 피를 상하게 하므로 그 백성들은 모두 피부색이 검고 땀구멍이 성글며 그것이 병이 되면 대부분 옹양이 생겨서 그것을 폄석(침)으로 치료해야 합니다.


故砭石者, 亦從東方來.
그러므로 침으로 치료하는 방법은 동방에서 전해진 것입니다.

...

凡將用鍼, 必先診脈, 視氣之劇易, 乃可以治也。
침을 쓰려고 하는 모든 경우에 반드시 맥을 진단하여 기가 안정되어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확인하여야 치료를 할 수 있다.

...

黃帝問於岐伯曰, 余子萬民, 養百姓, 而收租稅. 余哀其不給, 而屬有疾病. 余欲勿使被毒藥, 無用砭石, 欲以微鍼通其經脈, 調其血氣, 營其逆順出入之會. 令可傳於後世.” 『靈樞』, 九鍼 十二原
황제가 기백에게 물었다. “나는 만민을 자식으로 여기고, 백성 을 기르면서 그 조세를 거둡니다. 나는 그들의 (천수를) 다하지 못 함을 슬퍼하기에 질병 있음을 불쌍히 여깁니다. 나는 독약을 복용 하지 않고, 폄석(砭石)을 사용함이 없게 만들고자 합니다. 미침(微鍼)을 가지고 그 경맥을 통하게 하고, 혈기를 조절하여, 그 역순과 출입의 기틀을 운영하여, 후세에 전하고자 합니다

대충 찾은 건데, 침에 대한 언급이 정말 차고 넘치도록 많이 나와있다. (너무 많아서 요정도만 찾은 것.)

커다란 침이나 폄석을 이용하여 고름을 짜내는 것이 침의 원류였다는 이야기는 사실이다.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중국의학 연구자인 야마다 게이지의 책을 참고하기 바란다.

 

구침

황제내경 영추편에는 '구침'이라는 것이 나온다. 모양을 보면 알겠지만, 절개를 위한 침도 있고, 지압을 위한 침도 있다. 현대의 침에 가장 가까운 침은 '호침'인데, 머리카락 두께의 얇은 침이라는 뜻이다.

 

 

이런 주제까지 꺼내야하나.. 내가 다 부끄러울 정도인 것이, 가장 오래된 중국의학 서적인 황제내경은 '소문'과 '영추'로 나누어져 있다. 그런데 영추편은 애초에 침술서적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해리엇 홀 당신은 무엇을 보신 겁니까..?

 

최종적으로... 일단 침은 오래전부터 중국에 존재해왔었다. 당연히 연마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더욱 튼튼하며 얇은 침으로 발전해온 것이지만, 인체에 얇을 바늘을 통한 자극을 주어 치료효과를 주고자 하는 시도가 청동기-철기 시대 이후로 지속되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 시절에 침이 사용되었다는 고고학적 증거는 존재하지만 이러한  침은 크기가 상당히 컸다. 침술에 적합한 가는 철제침을 제조할 기술력은 400년 전까지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다.

 

도구가 먼저 있고나서 침술이 생긴 것이 아니다. 숟가락이 지금처럼 이쁘게 대량생산되지 않아도 인류는 숟가락을 만들어 밥을 퍼먹었다.. 지금과 같은 수준의 기술을 고대에 기대하면 안된다. 가느다란 침으로 피부와 피하조직을 자극하여 치료적 반응을 일으키는 것을 침이라고 정의한다면, 그 원류는 기원전 3세기경의 중국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사실 중국것이든 아니든 논의에 무슨 상관인지는 모르겠으나... 제법 힘을 주어 틀린 주장을 하기에 반론해본다.

참고 : www.medhist.or.kr/upload/pdf/kjmh-20-2-463.pdf

 

 

2. 역사 : '침술' 은 13세기에 서구에 소개되었다. 그 이후 침술은 유럽에서 시도되다가 말다가 했다.

 

솔직히 이 부분은 재미도 없고... '어쩌라고?' 싶었다.

그냥 도구만 가져가서 대충 쓴 거잖아? 그 시기에 침술을 활발히 사용하고 있었던 동양권의 이야기를 해야지..

 

그리고 침을 만들 기술은 400년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다면서 어떻게 침술은 13세기에 서구에 소개될수가 있지요?...

 

글이 너무 중구난방인데다, 굳이 침이 마이너하게 사용된 사건들만 찾아가는 느낌입니다..

 

3. 경혈은 실재하는가?

처음에는 360개의 경혈이 있었다. 이는 해부학적 원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일 년의 날짜 수를 대충 따른 것이다. 현재는 2000개가 넘는 경혈이 발견되어 농담으로 이제 피부에는 경혈이 아닌 곳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 말까지 나왔다. 경락도 9개라는 말도 있고, 10개나 11개라는 말도 있으니 원하는 것으로 골라잡으면 된다. 어느 숫자를 골라도 다른 숫자보다 못할 이유가 없다.

한의학적 이론은 치료 기술을 사용하기 위한 설명방식일 뿐입니다.

계속해서 그 설명 체계가 발전해온 것입니다.

 

현대에 들어서는 보다 해부학을 중심으로 한 침술이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만...

전통적인 경혈서를 보면 단순 경험의 축적으로 보시는 것이 맞습니다.

무슨 혈의 위치는 어디로 잡을 수 있으며, 어떤 증상이 있을 때 침을 놓거나 뜸을 뜨면 좋은지... 단순히 이것들의 반복입니다.

 

이걸 그냥 외우기 싫으니 만드는 것이 이론입니다. 이론에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 22/09/08 추가 :

실존하는 경혈과 경락에 대한 연구를 잘 소개한 블로그입니다. (초보 한의사 시기의 블로그 발췌)

 

경락이론으로 살펴본 침치료 기전

 

경락이론으로 살펴본 침치료 기전

제목: 경락이론으로 살펴본 침치료 기전 (Effects and Mechanisms of Acupuncture Based on the Princ...

blog.naver.com

[연구] 뇌는 진짜와 가짜 혈자리에 다르게 반응할까?

 

[연구] 뇌는 진짜와 가짜 혈자리에 다르게 반응할까?

제목: 침치료와 가짜 침치료는 통증 출력 영역에서 뇌의 다른 영역을 활성화한다: 건강한 피험자들을 대상...

blog.naver.com

 

https://youtu.be/zlM4ZE8EZM8

네이처지의 경혈 특이성의 기전에 대한 연구논문 해설입니다.

가천대학교 생리학교실의 배효진선생님이 강의해주십니다. 강의 대상자는 한의예과생으로,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내용이지만 천천히 따라간다면 비전공자라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4. 침술이 특정 질환의 자연적인 진행과정을 바꾼다고 밝혀진 적은 한번도 없다.

엥.. 그런 치료가 얼마나 있지요?

노화를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아직 대중화되지 않은 걸로 아는데...

 

일단 식견이 짧아 보지 못했다고 하니... 임상에서 훌륭하신 분은 충분히 좋은 성과를 내고 있으십니다.. 플라시보로 절단해야할 화상이 낫기도 하나요? ㅎㅎㅎㅎ

blog.naver.com/bluerain9476

 

아래는 미국 류마티스 학회(ACR)의 골관절염 가이드라인입니다.

Acupuncture가 보이네요. 하면 안되는건(비추) 아래 빨간색 치료들입니다.

물리치료, 마사지, 도수치료, 프롤로테라피 등등 익숙한 이름이 많습니다. 자세히 살펴보세요.

그냥 본인이 대체의학을 싫어하니까 깐다고 정신팔려서 하나도 안 찾아본 것 같은데요... ㅎㅎ

 

 

5. 침술을 받고 있다고 믿으면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침술을 받고 있지 않다고 믿으면 효과가 나타났다.

 

플라시보가 엄청난 나쁜 효과인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플라시보는 엄청나게 강력한 효과입니다. 이걸 약이 아닌 시술에서 배제한다? 거의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행위에 대한 완벽한 플라시보 디자인을 하실 수 있으면 노벨상 받을지도 모릅니다.

 

EBM의 성지, 코크란을 봅시다.

www.cochranelibrary.com/cdsr/doi/10.1002/14651858.CD013502/full

 

Surgery for rotator cuff tears - Karjalainen, TV - 2019 | Cochrane Library

If you have a Wiley Online Library institutional username and password, enter them here.

www.cochranelibrary.com

At the moment, we are uncertain whether rotator cuff repair surgery provides clinically meaningful benefits to people with symptomatic tears; it may provide little or no clinically important benefits with respect to pain, function, overall quality of life or participant‐rated global assessment of treatment success when compared with non‐operative treatment. Surgery may not improve shoulder pain or function compared with exercises, with or without glucocorticoid injections.
The trials included have methodology concerns and none included a placebo control. They included participants with mostly small degenerative tears involving the supraspinatus tendon and the conclusions of this review may not be applicable to traumatic tears, large tears involving the subscapularis tendon or young people. Furthermore, the trials did not assess if surgery could prevent arthritic changes in long‐term follow‐up. Further well‐designed trials in this area that include a placebo‐surgery control group and long follow‐up are needed to further increase certainty about the effects of surgery for rotator cuff tears.

어깨 회전근개 수술입니다.

회전근개가 찢어졌을 때 대개 수술치료를 합니다. 찢어졌으니까 이어붙여주는거죠.

 

"뭐여? 왜 플라시보군도 설정하지 않았지? 그리고 글루코코르티코이드, 즉 스테로이드 주사나 운동과 비교하여 큰 이점이 없다고?"

 

그런데 이게 현실입니다. EBM이라는게 원래 사변적인 면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깨 근육이 찢어졌는데 수술을 하지 않고 그냥 두는 경우는 잘 없죠. 회전근개 수술이 과학적 근거가 없는 미신이라고 떠벌리는 경우도 없구요.

 


하나 더 보죠.

TENS는 경피적 전기신경자극술입니다. 아마 물리치료 받으시면서 한번쯤은 받아보셨을 그것입니다.

그러면 텐스도 효과를 보고자하면... 대조군을 설정해야하지 않겠습니까? 플라시보군이요. 설마 천재 과학자 스켑티스트께서 잘 디자인된 실험도 하지 않고 그냥 시원하니까 효과가 있다는 주장을 하시지는 않겠지요?

 

www.jpain.org/article/S1526-5900(09)00655-5/fulltext

 

가짜 텐스 기계는 이렇습니다. 30초간 전류를 흐르게 한 이후 15초동안 점진적으로 전류가 없어지도록 하는 것이죠.

"아니 이게 무슨 가짜야 진짜 텐스잖아!!" 싶겠지만... 그렇습니다.

 

어쩔수 없는게, 치료받는 사람도 바보가 아니고 전류를 흘리지 않으면서 '자 지금 전기가 통해유~'하면 믿을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침도 마찬가지입니다. 안 찔러놓고 '찔렀어유~' 하면 누가 믿겠습니까.

 

그래서 대부분의 가짜 침(sham acupuncture)은 효과가 있습니다. 피부 자극을 하거든요. (진짜 침 → 피하조직까지 자극, 가짜 침 → 피부만 자극) 저는 가짜침의 효과가 오히려 피부 경혈점의 존재를 드러내준다고 생각하지만, 이 부분은 관점의 차이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

 

원래 그렇습니다. 모든 시술, 수술은 플라시보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참 아쉬운 부분입니다. 좋은 연구모델이 있으면 꼭 좀 알려주십시오. 전세계적으로도 모르고 있거든요... 이걸 가지고 논란거리를 만드는 사람에 대해서는... 두 가지 생각이 듭니다.

 

1. 환자를 본 적이 없거나 연구를 해 본 적이 없다.
2.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는 사람이다.

 

6. 연구에 일관성이 없다.

일단 동양의학의 종주국은 중국입니다. 좋으나 싫으나 중국입니다.

연구에 일관성이 없다는 말은 거기서 유래합니다. 왜냐하면 중국이니까...

 

그러면 수많은 연구 중 질이 좋은 연구만을 추려서 분석하면 됩니다. 왜 굳이 나쁜 논문만 찾아서 보나요...

일단 이 부분은 한의학이 해결해야 할 숙제입니다.

 

다만 사실상 보완대체의학으로서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의학으로 오는 환자들의 특성도 고려해야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연구가 침술을 믿는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다. 피험자들 중에는 침술이 효과가 있다는 선입견이 없었다면 아예 침술 시험에 지원하지 않았을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일단 침술 임상시험에 참가한 사람은 침술에 호의적인 사람일 것이다...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뭐 길게 할말이 없네요 ㅋㅋ 그렇다고 해리엇 홀 아줌마 같은 사람을 억지로 표본에 넣으면 빠득빠득 이를 갈며 더 아프다고 주장할 게 뻔하니... 만성통증이 있는 사람은 당연히 침이나 다른 치료에 호의적일 수 있겠죠. 당연히 기대감이 있으니 시험에 응하지 않을까요? 그 반대도 가능하구요(무기력). 그리고 이 부분은 홀 아줌마의 단순 추측이니만큼 ㅋㅋㅋㅋ 여기서 끝내도 될 것 같습니다.

 

 

 


해리엇 홀 아줌마에게 하고 싶은 말...

 

1. 테제(these)를 가지고 논리를 전개한다기보다 안티테제(antithese), 즉 반론만으로 구성된 주장을 펼치는 편인데, 원래의 주장을 첨부하는 것이 보다 객관적으로 읽힐 겁니다. 일단 화가 난 건 알겠는데, 아주머니가 어떤 주장에 대해 화가 나신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2. 비판하고자 하는 것이 '특정 질환에 대한 침술'인지, '아큐펑쳐리스트의 의료행위'인지, '침술 그 자체'인지 명확한 카테고리를 정하지 않으면 논리적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수술은 해롭다, 왜냐하면 건강한 사람의 정강이 뼈를 잘랐더니 수술 이후 부작용이 심했으며 10년 이후에도 멀쩡하게 걷지 못하였고 다양한 부위의 다양한 통증을 호소하였다.'

 

라고 한다면... 말도 안되는 소리겠지요? 해로운 것은 수술 그 자체가 아닙니다.

저는 해리엇 홀의 기사는 쓰레기라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스켑틱이라는 잡지는 구독할 생각이거든요.

 

3. 모르면 확실한 근거자료를 준비하거나, 아니면 가만히 있으세요...

 

4. 다만 한의학, 오스테오파시, 아유르베다 등의 각종 보완대체의학에 대한 비판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제가 스켑틱에 원하는 바이기도 하구요. 제가 이 기고글을 읽고 어딘가 불편함을 느낀 이유는... 단순히 원고의 수준이 매우 낮았기 때문입니다. 훌륭한 잡지에 어울리는 훌륭한 article을 읽을 수 있도록 자숙의 시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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